[제주도민일보 신지란 기자] 서귀포 남쪽 해상에서 심한 탈진상태로 갈치잡이 어선에 발견돼 제주대 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로 이송된 ‘갈색얼가니새’가 전문의료진의 진료로 건강을 되찾고 있다.구조된 ‘갈색얼가니새’(영명 : Brown Boody, 학명 : Sula leucogaster)는 수컷으로 70㎝정도 크기에 머리와
▲ 제구촌의 섬들이 모여 토속적인 섬의 문화를 펼쳤던 '98제주세계섬문화축제'. 1998년 7월18일부터 8월13일까지 27일간 제주시 오라관광지구에서 열린 이 축제의 주제는 '섬, 늘 푸른 미래를 위하여'였다. 서사모아, 페낭, 지중해의 샤르데냐, 크레타 등 25개국에서 28개 섬이 참가, 섬나라 고유의 민속무용, 전통음악, 전통음식, 풍물 등 볼
▲ 여름철 구좌읍 하도리에서 만난 어부 내외가 바람 지나는 그늘에 앉아 일하는 모습이다. 남편은 그물을 손질하고, 부인은 옷을 수선하면서 한쪽 발로는 '애기구덕'(아기를 눕혀 흔들어 재우는, 대로 만든 기구)을 흔들고 있다. 멍석이 세워 있고, '정짓문'(부엌문) 곁에 '짇을커'(땔감), '물팡'(물동이 따위를 올려놓는 대) 위에는 '물구덕
▲ 1949년 가을 제주4.3사건이 한창일 무렵 전도학생연맹 대표들이 모여 함덕에 주둔중인 군부대를 찾아가 위문공연을 했다. 당시 위문공연에선 40여명의 학생들이 연극.무용.노래를 공연했는데 학생연맹 대표들은 제주농고와 서귀중학교 학생들이 많았고 공연지도는 강성빈이 맡았었다. 이 사진은 공연을 마치고 함덕해안가에서 촬영한 것으로 앞줄 어른들은 군인들이고 가
[제주도민일보 신지란 기자] 제58회 현충일을 맞아 제주시를 비롯한 도내 충혼묘지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기리는 추념식이 거행됐다.이날 오전 제주시 충혼묘지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우근민 제주지사를 비롯한 각급기관·단체장과 상이군경회·전몰군경유족회 등 보훈단체,학생·공무원 등이 참석해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렸다.
[제주도민일보 신지란 기자]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한라산의 아름다운 보물들’ 연속기획으로 ‘왕솜대’와 ‘귀룽나무’를 내놓았다.꽃이 흰쌀과 같은 백합과의 ‘왕솜대’는 높이 20~50cm의 다년생 초본으로 원산지는 한국이다.원줄기는 비스듬히 자라며 윗부분으로 갈수록 많은
▲ 옹지종기 자리 잡은 초가집들 사이로 수건을 머리에 둘러쓴 마라도의 아낙네들이 '솔박'을 이용해 탈곡한 곡식을 바람에 불려 정선(精選)하고 있는 모습이다. '솔박'은 '속박, 손박, 솜박, 솔빡, 좀팍, 좀팍세기' 등 여러가지로 불리는데, 둥그스름하고 납작하게 펴서 만든 나무그릇으로 곡식을 퍼 담거나 바람에 까불려서 고를 때 사용했다. 바람 부
▲ 1999년에 처음으로 열린 용연 선상(船上) 음악회의 모습이다. 이 음악회는 동굴소리연구회의 대표였던 현행복이 용연야범(龍淵夜泛)을 음악회로 재현한 문화행사로, 2002년부터는 제주시 주최 제주문화원 주관으로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출연자들은 용연 계곡에 띄워진 제주의 전통 뗏목인 '테우'에 올라 공연을 펼치고, 관람석은 용연계곡의 동쪽과 서쪽 둔덕
▲ 일제강점기 때 제주시 칠성통의 반상점(伴商店)으로, 잡화를 팔았던 일본인 가게 모습이다. 이 상점은 나중에 한양상회가 됐다. 상점 왼쪽 집이 제주약국(김두봉 운영)이다. 전봇대 옆의 짐을 실은 자전거와 간판, 상점 안 풍경, 일본어로 쓰인 광고 문안 등이 이채롭다.(쓰루가와 사진).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1'에서 발췌.
▲ 1970년대 중반 제주공설운동장에서 열렸던 교련 실기대회. 뒤쪽 스탠드 오른편 상단에 총력안보라는 글씨가 보인다. 오현고등학교 학생들의 '받들어 총' 장면이다. 1969년 2월에 공포된 고등학교 교련과 교육 과정의 내용은 남녀의 특성을 감안해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구분해 남학생은 제식훈련, 총검술, 사격, 독도법 및 군법 등을 지도하는 반면, 여학생은
▲ 1970년 여름에 찍은 서귀포 천지연 하류 쪽의 포구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아침에 만선을 이룬 고깃배가 막 들어올 때의 장면인 것 같다. 갯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기를 사러 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잔잔한 바다와 맞닿은 곳에 녹음이 무성하고 절벽 위로 초가가 운치 있게 자리를 잡았다.(국가기록원) '사진으로 보는 제
▲ 우도 동굴음악회는 1997년 동굴소리연구회 현행복 대표가 '동굴과 소리의 만남'이라는 이색적인 아이템을 갖고 시작됐다. 우도 동굴음악회를 찾은 관광객들이 환상의 하모니에 빠져들고 있다. 그 사이 우도 동굴음악회는 이색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도 동굴음악회는 1997년 속칭 '고래콧구멍동굴'에서 시작된 이후 동안경굴 외에 1998년 동해시 천곡
▲ 1960년대에 찍은 사진이다. 농부들이 말과 마차를 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앞에는 마차 두 대가 지나가고 있는데, 마차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다. 뒤에는 농부 세 사람이 한 필 또는 두 필의 말을 끌고 가고 있다. 도로는 확장된 것같이 보이나 포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길가로는 집들이 늘어서 있고 왼편으로 성(城)의 일부분도 보인다. 대정현성 부근으로
▲ 1930년대 제주민속자료 1호인 복신미륵상인 서자복을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이다. 서자복은 제주시 용담동 동한두기 용화사 경내에 있는 미륵상으로, 요즘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제주읍성을 중심으로 동쪽 건입동에 있는 동미륵상과 마주보는 형태로 세워졌다. 이들 미륵상은 자복상으로 불리는데, 서쪽에 있어서 서자복상, 동쪽에 있어 동자복상이라 부른다.
▲ 1990년대의 자리돔 잡는 장면이다. 테우를 이용하던 에전의 모습과는 달리 한 척의 작은 배를 활용해 그물로 자리돔을 잡아 올리고 있다. 서귀포시 보목동 앞바다 섶섭 부근에서 촬영한 것이다. 예로부터 자리돔 하면 모슬포와 보목의 자리돔이 유명하다. 물살이 센 바다에서 잡히는 모슬포 자리돔은 크기가 굵고 가시가 억세어 주로 구이와 조림용으로 이용되는데 비
▲ 1977년 9월15일 12시50분 에베레스트 한국원정대(대장 김영도) 고상돈 대원이 셰르파 펨바 노르부와 함께 에베레스트 8848m 정상에서 태극기를 들어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그는 "여기는 정상"이라는 말로 정상에 선 기쁨을 표현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섬으로써 제주도 산악인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 지금은 제주공항 확장과정에서 사라진 1970년대 말의 도두동 '몰래물' 마을의 모습이다. 낮게 자리잡은 초가, 그 사이로 난 꾸불꾸불한 마을길, 군데군데 보이는 제법 큰 나무들이 1960~1970년대 제주도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을 연상시킨다. 1979년까지 3차례에 걸친 제주공항 확장공사로 인해 '몰래물' 마을은 완전히 폐동되고, 한때 150 여
▲ 오현단 일대가 새롭게 복원되기 이전의 모습이다. 오현의 위패를 상장히는 조두석과 함께 목사 장인식이 1850년 4월에 써서 세운 <귤림서원묘정비기> 비가 이도1동 142-3에 서있다. 오현단은 고종 8년(1871) 귤림서원이 철폐된 후, 고종 8년(1892) 제주 유림대표 김희정 등의 건의에 의해 귤림서원에 배향됐던 오현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 일제강점기 때 제주도에서 검사장을 지냈던 박종훈 판사 일행이 외도 월대에서 망중한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다. 모자와 흰 두루마기가 이채롭다. 월대는 외도2동 도근천 하류에 있는데, 물이 깊고 맑으며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어서 뱀장어와 은어가 많다. 마을 사람들은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동쪽 숲 사이로 떠오르는 달이 맑은 물가에 비친 달 그
▲ 표선면 성읍리 일관헌 주변에 위치한 느티나무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에 정의현청이 있었던 곳으로 느티나무는 정의현성 안 정의현감이 정무를 보던 동헌 오른쪽에 자리한다. 현재 이곳에 있는 1그루의 느티나무와 3그루의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61호로 지정(1964. 1. 31.)됐다. 그 중 느티나무의 높이는 15m, 둘레 5.3m이며 지상 1m 부위에서